1982년,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2연패의 부푼 꿈을 안고 스페인으로 갔다.
조별리그에서 맞이할 상대는 상대적으로 아르헨티나보다 약체인 헝가리, 엘살바도르, 그리고 벨기에였다.
당연히 조 1위로 2차리그에 진출해야했을 아르헨티나였지만 벨기에전에서 삐끗하면서 조 2위로 어정쩡하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아르헨티나에게 득점을 기록하는 에드윈 판덴베르흐.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2위로 미끌어지고 만다.
하지만 메노티의 아르헨티나는 조 2위로 1차 조별리그를 통과한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는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해 국가 내부사정과 외교적인 면에서 모두 큰 위기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절망에 빠진것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인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막기위해 언론을 통제하며 거짓된 뉴스보도를 자행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
그러나 이 추잡한 사기극은 월드컵을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간 선수들에 의해 들통이났고,
라 알비 셀레스테의 선수들은 매일 절망에 빠져 호텔방에만 틀어밖혀 있었다고 한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하고 아르헨티나의 국민을 거짓으로 선동한 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레오폴도 갈티에리. 그는 전쟁에서의 패전으로도 모자라 거짓뉴스를 전하며 국민들에게 씻기 어려운 두개의 상처를 입혔다.
전쟁에서 진 것을 알고 스페인으로 갔다면 전의에 불타올라 '우리가 아르헨티나의 희망이 되자!' 라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것이, 나의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야하는 일국의 수장이 자신의 안위와 공명을 위해 스스럼없이 국민들에게 거짓을 했다는 생각.
아마도 마음속에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우러나와 섞여 절망으로 표출되었을것같다.
애초에 아르헨티나는, 우선 우승후보가 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현실을 감당해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1라운드를 통과하고 2차 12강 조별리그에 진출했지만, 더더욱 더 암울한 현실이
라 알비 셀레스테를 가로막았다.
바로, 2라운드에서 상대해야 하는 두 팀이 브라질과 이탈리아였던 것이다.
저 둘이 어떤 팀인가?
브라질은 황금의 4중주인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쥬, 팔캉으로 구성된 역대최고의 브라질대표팀을 거론할때 이따금 나오는 팀이고,
이탈리아 또한 골키퍼 디노 조프를 비롯해 젠틸레, 콜로바티, 시레아 등등 세리에 A 당대 최고의 선수들의 결집체 였다.
1982년 월드컵 당시의 브라질의 베스트 11 라인업.
지쿠, 소크라치스, 팔캉, 세레쥬로 이어지는 황금의 4중주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브라질 축구대표팀을 논할때 심심치않게 언급된다.
1982년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의 베스트 11.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의 골키퍼를 논할 수 있는 디노 조프를 필두로 카브리니, 시레아, 젠틸레, 콜로바티등의 강력한 수비를 밑천삼아 경기를 이끄는 팀이었다.
또한 저 두팀의 공통점은 4년전의 월드컵에서 유이하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패하지 않은 팀이라는 것이다.
이미 승리의 여신은 아르헨티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1차전 이탈리아 전이 시작되었다.
양팀의 전술 컨셉은 명확했다.
켐페스와 아르딜레스를 주축으로 공격진까지 공을 몰고 가서, 마라도나를 중심으로한 공격진이 득점을 하겠다는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막고, 역습으로 득점을 하겠다는 이탈리아.
양팀은 모두 측면을 위주로 공격을 전개하였는데, 그 이유는 판이하다.
먼저 아르헨티나의 경우, 공격진에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득점을 해줄 스트라이커가 없는 것이 그것이었다.
메노티 감독의 전술은 '마라도나를 펄스나인으로 배치시켜 2선에 순간적으로 마라도나 켐페스, 아르딜레스로 수적우위를 점한뒤, 양쪽 윙포워드가 중앙으로 침투하여 득점을 올린다' 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전술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이탈리아의 센터백이었던 젠틸레, 시레아, 콜로바티가 중앙수비를 철저하게 하면서 마라도나를 결사적으로 막아냈고 켐페스와 아르딜레스는 타르델리와 콜로바티에게 번번히 막혔다.
중앙이 막히니 남은것은 측면으로 활로를 여는것, 그러나 왼쪽에는 파체티의 후계자로 손색없으며, 말디니의 선배로 부족하지 않은 안토니오 카브리니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토르난테 역할을 맡은 브루노 콘티와 이따금 중앙에서 지원을 오는 클라우디오 젠틸레가 있었다.
이는 결국 2선 미드필더가 측면윙어를 지원가야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양쪽 풀백들까지 가세해야 비로소 측면에서의 수적우위를 점하고 크로스를 올릴수 있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공중전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측면 활용을 매우 전략적으로 했는데, 중앙 미드필더인 타르델리와 콜로바티(콜로바티는 중앙수비수 이지만 이 경기에서는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다.)
를 모두 수비적으로 내린 탓에 카브리니와 콘티의 오버래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투톱이었던 로시와 그라치아니에 양쪽 측면 자원인 카브리니와 콘티, 그리고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인 타르델리의 공격가담까지 더해 아르헨티나를 2대1로 꺾었다.
벼랑 끝에 몰린 아르헨티나는 다음상대인 브라질을 무조건 이겨야 4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도 아르헨티나는 형편없는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브라질의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접근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박스안에 그 어떠한 선수도 들어가있지 않은것이었다.
마라도나와 디아즈, 켐페스가 2선에서 지원을 해주는 형태이면, 양쪽 윙어가 박스 안으로 침투를 해야한다.
반대로 양쪽 윙이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하면, 박스안에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는 선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브라질의 페널티 박스에는 브라질 수비수들만이 있었고,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포클랜드 전쟁에서 진 여파때문인지 페널티 박스에 침투할 생각을 보이지 않았고 3대1의 무참한 패배를 맛보면서 월드컵에서 퇴장하였다.
물론 전술적인 움직임에서 좋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축구에 집중하기에는 정신적인 버팀목자체가 제거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한 경기를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연민의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메노티의 아르헨티나는 이렇게 항해를 마쳤다. 그의 이상적인 공격축구는 그로부터 비엘사를 거치면서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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