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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전법의 진실을 파헤쳐보자

어라하 2023. 2. 19. 00:44

1966년 7월 20일. 북한이 이탈리아를 꺽으면서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다리 전법' 으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겼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수 있다.

흔히 아군을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 이탈리아의 공중전에서 승리한다 라고 잘못 알려진 사다리 전법과 그 사진.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북한은 사다리 전법이라는 전술을 쓴 적이 없다고 판단한다.

양팀의 전술컨셉은 모두 선수비 후역습을 주로 삼았고, 이는 불가피하게 롱볼축구 대 롱볼축구의 대결구도를 불러왔다.

일반적으로, 롱볼축구의 핵심이자 화룡점정으로는 확실한 타겟맨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길고 높은 크로스를 우세한 피지컬로 공중경합에서 이겨내, 주위의 동료들에게 헤딩패스를 주거나 본인이 직접 마무리하는 형태의 롱볼축구가 보편적인 롱볼축구라고 입력이 되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전개가 되기 때문이다.

2022년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 대 가나전에서 헤딩골을 성공 시키는 조규성.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타겟맨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은 좀 다른 방식으로 이탈리아에게 우세를 점했다.


북한의 베스트 11이다. 이탈리아전 승리 요인을 알기위해서는 먼저 이 포메이션을 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북한의 일사분란한 수비 조직력'
이다.
북한은 4백 시스템을 썼는데, 경기중에 수비라인이 조직적인 모습을 볼수 있으며, 대인방어보다는 지역방어에 입각한 수비전술을 보여준다. 이보다 한참 뒤의 1990년대에 아리고 사키가 창시하다시피한 4-4-2 기반의 지역방어 전술보다는 원시적이시만 그래도 4백에 기반한 지역방어 전술을 잘 보여주고있다.

또한 4백 앞에 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어 4백을 보호했는데, 이 투볼란치는 상황에 따라 중앙과 측면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으며 수비시의 수적 우세를 가져왔다.

아리고 사키, 1990년대를 넘어 역대 축구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거론되는 감독이자 '사키이즘'이라는 지역방어 전술로 세계축구사의 한획을 그은 불세출의 명장이다.



두번째 이유는 빠른 공수 전환이다.
물론 카테나치오의 이탈리아도 공수전환의 빠르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팀이었으나, 북한은 카테나치오의 맹점을 찔렀다.

북한의 중원은 박승진과 림승휘가 맡고 있었다. 그말은 즉, 4명의 공격수가 앞에 있는 4-2-4포메이션이다. 박두익이 미드필더 포지션에 있기는 하지만, 그는 공격형 롤을 맡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그리고 우리는 카테나치오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카테나치오, 이탈리아어로 '빗장'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뒤로 물러서서 상대의 공격을 막고 순식간에 직선적인 패스로 번개같이 골을 넣는 전술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반대로 아군이 역습을 당하거나 경기의 주도권을 뺏기면 상대방은 2선 까지 프리패스로 치고 올라갈수 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맹점은 1년 후, 1966/67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셀틱의 조크 스타인이 인터밀란의 카테나치오를 상대로 다시 한번 짚어낸다.


셀틱의 명장 조크 스타인, 그는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인터밀란의 카테나치오의 맹점을 공략하며 셀틱에게 트레블을 안겨준 셀틱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다.


세번째 이유로는 이탈리아의 주장 지아코모 불가렐리의 부상이탈이다.
박승진에게 전반 중반 태클을 걸다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이탈한 불가렐리의 존재감은 이탈리아에게 큰 존재였다.
파트너인 잔니 리베라에게는 없었던 수비력과 시야와 롱패스로 인한 공격의 시작점, 또한 경기 운영력, 템포조절, 리더쉽까지. 그야말로 아주리군단의 엔진이었던것이다. 1966년 당시엔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기에, 10vs11로 수적 열세에 놓인건 덤이었다.
그리고 불가렐리의 파트너 잔니 리베라에게는 박승진과 림승휘 두명을 중원에서 홀로 틀어막을 수비력은 없었다. 이는 북한에게 '미드필더를 통한 빌드업' 이라는 또 하나의 공격옵션 추가를 제공해주었다.


볼로냐와 이탈리아 대표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로 회자되는 지아코모 불가렐리. 오늘날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에서는 한 시즌 동안 최고의 미드필더를 뽑아 '불가렐리 상' 을 수여한다.


마지막 네번째 이유로는 카테나치오의 또 다른 맹점인 '오프사이드 트랩의 부재' 였다.
60년대 카테나치오의 수비전술은 최종수비뒤에 자유인, 즉 리베로라 불리는 또 하나의 수비수를 배치해서 수비시에 결코 수적으로도 우세를 점하며, 상대편의 공격에 공간을 점령당하지 않는 수비 방식이었다.


아르만도 피키. 그는 엘레리오 에레라 감독의 라 그랑데 인테르 에서 최종수비수들이었던 과르네리와 부르긴치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는 리베로였다.


체사레 말디니. 그 역시 AC밀란의 네레오 로코 감독의 리베로로 그 소임을 다했다.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런 카테나치오의 수비시스템에서는 오프사이드가 나오기 어려웠다. 오프사이드 트랩의 역할을 리베로가 대체하기 때문인데, 이는 리베로에게 어느정도의 부담이 지워지며, 고도의 수비집중력을 요하는 전술이었다.


출처: 스루패스의 풋볼칼럼

스위퍼 포지션이 리베로이다.하프백과 풀백이 센터백에 위치하고 스위퍼가 뒤에서 수비라인이 붕괴되는 곳을 지원하여 상대의 공격을 차단한다.
그러나 이는 오프사이드 트랩의 활용도를 낮추는 단점도 있었다.


박두익의 득점 장면을 보면, 헤딩 패스를 받은 박두익이 슛을 하기직전 후방에서 이탈리아 수비수가 나오며, 양측면에서 풀백이 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득점장면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은 없었지만, 리베로의 아쉬운 움직임이 아니라 오프사이드 트랩을 썼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박두익의 득점장면, 슛직전에 나오는 이탈리아 리베로의 수비는 너무나 아쉬웠다.

물론 북한은 그들의 노력과 어느정도의 운도 가미되어 월드컵 8강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하지만 사다리 전법 보다는 카테나치오의 맹점을 짚어내 경기를 주도적으로 풀어간 북한의 전략적인 승리가 아닌가 싶다.